끝내 잠들지 못하는 밤, 남자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반만 걷었다. 밀도 높은 칠흑이 내려앉은 가운데 땅 위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숨죽였다. 밤의 벗이자 인간에게는 희망인 별과 달만이 자유로웠다. 눈동자 하나에도 무수히 담기는 성광은 비록 멈춰 있지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유구하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나탕송 백작, 지스카르는 창틀 측면에 의자를 비스듬히 두고 앉았다. 의자 네 다리는 서로 길이가 어긋나서 몸을 조금만 기울이면 같이 움직여서 덜걱거렸다. 그러나 지스카르는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고 앉는 시간에 익숙한 편이어서 개의치 않았다.
창밖에 펼쳐진 높고 낮은 지붕들 사이에서 간간이 연하게 번지는 불빛이 눈에 띄었다. 광막한 어둠에 견주면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그 보잘것없고 아름다운 정경 끄트머리에는 별자리도 없는 암흑이 기나긴 수평으로 펼쳐졌다. 따라서 말 그대로 수평선(水平線)이었다. 까마득해도 분명하게 실재하는 물의 영역을 지스카르는 우두커니 관조했다. 상념은 바다처럼 깊어졌다.
여태껏 뜬 눈인 까닭은 으레 여행자를 사로잡는 설렘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그는 새로운 경험과 낯선 장소에서 얻는 기쁨을 알지만, 이미 젊은 시절에 떠돌 만큼 떠돌아다닌 몸이었다. 더구나 지금은 로사 알브의 대영주이다. 하지만 잠시 로사 알브에서 벗어난 대영주로서 빈자리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에겐 믿음직하고 유능한 후계자가 있고, 사실상 딸이 옛적에 자리를 물려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중의 벗에 속한 위원으로서는 어떨까. 이곳은 오를란느 땅이지만 아노마라드와 매우 근접한 지역이다. 지스카르는 조직을 이루는 조각 중에서도 제법 크고 중요하기에 그의 행보는 항상 주시 된다. 왕국 8군에게든, 민중의 벗에게든 말이다. 따라서 지스카르는 현재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 비밀리에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은 보통 인물이 아니다. 일신의 안위야 조직에 몸담은 순간부터 내려놓았고, 그저 오늘 만남이 알려지면 두 당사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불필요한 혼란만 야기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스카르가 밤이 이슥하도록 깨어 있는 이유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탕송 백작도 조직의 위원도 아닌 한 인간으로서 합당하게 누리는 감수성인가.
곰곰이 헤아리던 그는 커튼을 도로 닫고 일어났다. 펑퍼짐한 로브로 몸을 가리고 두건은 충분히 깊게 눌러 썼다. 어깨 한쪽에 작은 바랑까지 걸치자 헤진 가죽신과 합쳐져 흔한 여행객으로 보였다. 거기에 귀족답게 점잖고 똑바른 몸짓 대신, 밑창을 약간씩 끄는 걸음걸이로 나섰다.
지스카르는 여관에서부터 꽤 오래 걸었다. 끈적한 바람과 소금 냄새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항구에 도착한 후에는 부둣가를 가로질러서 해변으로 향했다. 독수리 부리처럼 휘어진 뭍으로 달빛의 푸른 세례를 받은 파도가 잘랑잘랑 느긋하게 밀려왔다. 목이 긴 부츠를 신었으면 거리낌 없이 거닐었겠지만, 지스카르는 여행자로 가장했을 뿐이지 실제로 여행하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신발에 들어간 사립을 터느라 애먹는 상황은 사양하고 싶었으므로 모래사장 앞에서 멈춰 섰다. 바닷바람이 두건을 약간 들쳤으나 내버려 두었다. 해변은 갈매기 한 마리 없이 적막했고, 누군가가 남자의 느슨하면서 깊은 눈매나 얄브스름한 뺨을 훔쳐본다면 목전에 펼쳐진 모래와 바닷물과 달빛이 전부였다. 다행히 그것들은 과묵했다. 밤바다 앞에서 서성대는 사람이 어딘가의 대영주이건 비밀 조직의 간부이건 관심조차 없으리라. 지스카르는 그러한 사실에 안심했지만 틈틈이 두건을 앞으로 내려 당기는 신중함은 잃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작은 해변의 끝과 끝을 왕복할 만한 시간이 흐른 때였다. 마치 그의 조심성을 확인하듯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위험한 불청객인지 호기심 많은 손님인지 모를 인기척이 차차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스카르는 무덤덤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내심 긴장한 채, 곧이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 문제를 가정하고 또 대비했다. 드디어 발자취가 근처에서 멎었다.
마냥 무반응으로 일관하기도 부자연스러운 까닭에 눈길이라도 보내려는 찰나였다. 상대의 목소리가 한 박자 빨랐다.
“산책하기에 야심한 시간이 아니오?”
아주 명료한 음성이었다. 대체로 설득에 능하거나 지시에 익숙한 이들이 가지는 특성이다. 억양은 언뜻 평범하게 들리지만, 주의력이 좋고 귀족을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만한 계급적 습성도 묻어 있다.
“나이가 드니 밤잠이 사라지는 날도 잦더군요.”
여상스레 대답하고 나서야 뒤돌아본 지스카르는 낯익은 얼굴과 마주했다. 노인은 그 나이대에서 보기 드물게 실팍한 체격을 지녔다. 계절감을 잊은 듯 얇은 셔츠 차림이라 굵은 팔뚝과 널찍한 어깨가 두드러졌다. 이목구비는 짙었고 또렷이 부리부리한 눈매는 그가 타고나서 갈고닦은 통찰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워낙 날카로워 자칫 사납게도 보일 인상은 연륜으로 쌓아 올린 중후함으로 자연스럽게 중화된다. 그에게 빙긋 미소하며 묵례했다.
“여기서 어르신을 뵈리라고 짐작하지 못해 무척 놀랐습니다.”
부드러운 말씨는 인사 외에도 다른 의도를 내포했다. 약속한 장소도 만날 시간도 아닌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완곡한 물음이다. 아르님 소공작의 유명세 때문에 종종 세간에서 간과하는 또 한 명의 실존하는 데모닉, 히스파니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대가 염려하는 바를 알고 있소. 그러나 이는 단지 우연일 뿐이오. 나는 오늘 해 질 무렵에 내 배를 타고 이곳에 입항했고, 당신을 발견하게 된 연유는 순전히 배의 선미에서 이 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라오.”
그러면서 부두에 정박한 범선을 가리켰다. 아까 부둣가에서 지나친 배였다. 히스파니에가 한 배의 어엿한 선장이며 어쩌면 함대에 버금가는 숫자의 배를 소유했을 공산도 크다는 정보는 익히 들었다. 아르님의 계보를 안다면 그 집안의 사람이 완연한 뱃사람으로 보여도 납득한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기에는 육로보다 해로가 나았다. 히스파니에가 그의 범선으로 왔다는 말은 진실이리라.
“새벽 세 시에 홀로 바다를 응시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기가 어렵소. 별난 자라고만 여겼지 그대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지스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애써 추궁하는 부담을 지지 않게끔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 노인에게 표하는 예였다. 하지만 모든 의혹이 일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어르신께서 제게 말을 건네실 때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 기색이 아니셨습니다.”
히스파니에가 얘기했다시피 야심한 때였다. 항구에 배를 댔으니 전부 하선했을 터였다. 지키는 자가 남아도 말단 선원이지 선장이 맡을 역할이겠는가. 등불 하나도 안 밝힌 범선에서 밤을 새우다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실로 공교로웠다.
“멀리서는 몰랐으나 이리로 내려오던 중에 불현듯이 알겠더구려. 이런 시간에 바다를 감상하는 별난 사람이 어디 당신뿐이겠소? 설령 그대가 아니라도 나 역시 잠이 안 오던 참이니 말벗이나 청할 심산이었소.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오.”
이번에는 지스카르 쪽에서 면구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사실 마음으로는 히스파니에를 믿었다. 그렇더라도 민중의 벗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인 호감이나 신뢰를 넘어 객관적으로 사고할 책무가 있다. 사소한 실수가 치명적인 비수로 돌아와 목을 찌르면 단지 지스카르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못했다. 물론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서 매사 이성만 앞세우기란 녹록지 않고, 조직을 위한 부품으로 인간성마저 포기하는 길은 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흔쾌히 후자를 택하고 투신했다. 때때로 말리고 싶으면서도 절박함을 깊이 이해했으며, 안타깝게도 민중의 벗은 그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지금껏 살아남았다. 모든 투쟁은 태생적으로 같은 딜레마에 시달리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부단히 질문하여 스스로 답을 구하고 균형을 찾을 뿐이다.
“물론입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탓하지 않으시고 솔직하게 답해 주시니 참으로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오랫동안 숱한 비밀을 품고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선지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대였어도 다르지 않았을 거요. 이제는 예까지 어찌 나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소?”
“달리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르신 말씀대로 바다를 보고 있었습니다. 왠지 파도가 저를 부르는 듯해 잠자리에 들기 어렵더군요. 이 나이를 먹고서도 불가해한 충동에 이끌려 이리 밤중에 뛰어나오다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부끄러우실 까닭이 무엇이겠소. 바다는 본디 그런 마력을 지녔다오.”
마력이라. 다름 아닌 히스파니에가 이야기하니 아주 그럴싸하게 들렸다. 데모닉 혈통의 시원(始原)이 바로 해상을 누비고 다스렸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스카르는 바다를 한 번, 다시 히스파니에를 한 번 보았다. 노인은 밤에 가려진 수평선보다 훨씬 아득한 바다 저편을 조망하는 듯했다. 명징한 안광을 가만 보노라면 육십이 넘은 나이조차 그를 설명하는 여러 특징적인 요소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내 눈길을 알아차린 히스파니에가 고개를 외틀었다. 새벽에 걸맞게 속내가 불확실한 시선이 짧게 오갔다. 노인은 바닷물에 발도 못 담가 본 육지 사람을 놀리는 선장처럼 짓궂은 어조로 물었다.
“바닷바람 한 번 제대로 쐬어 보시겠소?”
그러면서 짓는 미소가 꽤 소년 같았다.
지스카르는 창졸간에 그의 범선에 올랐다. 히스파니에가 갑판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선원에게 명령하자 그는 지체 없이 달려갔다. 부둣가와 인접한 주점 겸 여관에서 나온 선원들이 승선하더니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 낯선 손님이 갑판 한복판에서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섰건만, 그들은 선수상이라도 대하듯이 자연스럽게 지스카르를 지나쳤다. 새벽에 대뜸 불려 와서 불만스러운 낌새도, 잠이 덜 깨서 허둥거리는 움직임도 일절 없다. 그것만으로 엄격한 기강을 실감했다. 지스카르는 선원들의 작업을 훼방하지 않는 위치로 비켜섰다. 일등항해사와 몇 마디 나눈 히스파니에가 금세 돌아왔다.
“저쪽으로 갑시다. 선미가 한적해서 편할 거요.”
“어르신, 어디로 가는지 여쭤도 될는지요.”
“설마 로사 알브의 대영주를 납치라도 하겠소? 인근 해역을 천천히 돌다가 이 항구에 도로 내려 드릴 터이니 안심하고 밤바다를 감상하시구려.”
쾌활한 농조에 엷게 웃으면서도 상대의 순수하고도 변덕스러운 선의를 다소 당혹스럽게 여겼다. 막역한 사이라면 모를까, 아르님 공작의 숙부와 나탕송 백작은 선물을 주고받을 관계가 못 되었다. 과연 이것을 받아들여도 좋을지 지스카르는 갈등했다. 숙련된 선원들이 어느덧 준비를 마쳤고 갑판 곳곳에는 등불도 환하게 걸렸다. 그러나 선장의 출항 명령은 아직이었다. 히스파니에가 결정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 설령 성의를 사양하더라도 노인은 점잖게 받아들이리라.
입장과 지위를 떠나 자유로운 개인으로 만났더라면 분명히 지스카르는 흔쾌히 히스파니에와 교류하길 바랐을 것이다. 현명하고 경험이 많은 데모닉의 좋은 말동무이기를 기꺼이 자처했을 것이다. 아니, 나탕송 백작이며 민중의 벗 일원으로서도 히스파니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고픈 바람을 깨끗이 버리지 못했다. 고민 끝에 지스카르는 공손히 응했다.
“감사합니다. 뜻밖에 귀한 경험을 하게 되겠군요. 제가 근사한 배와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작은 실수를 범하더라도 어르신께서 너그러이 보아 주십시오.”
“그리 예의를 차리시니 내가 낯을 들기 어렵구려. 지금은 그대처럼 저 매력적인 밤바다에 잠을 빼앗긴 어느 노인일 뿐이니 편히 계시오.”
그는 출항 지시를 내렸다. 곧 거대한 선체는 감탄스러울 만큼 우아하게 부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배의 뒤편에는 고물 위로 2층짜리 브릿지가 멋드러지게 우뚝 섰다. 위층은 조타실이었고 지스카르는 그 아래층인 선장실로 초대를 받았다. 히스파니에가 칸델라에 불을 붙였다. 출입문 맞은편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였는데 위에는 해도(海圖)가 펼쳐졌고 둥글게 말린 양피지들이 옆에 쌓였다. 그리고 선장에게 어울릴 법한 큰 삼각모는 의자 등받이의 뾰족한 꼭대기에 대강 걸린 채였다. 좌우에 하나씩 있는 여닫이문은 중앙에 세로진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렸다. 간신히 그곳까지 다다른 칸델라의 빛이 새파란 파도 무늬에 나른하게 기대어 앉았다.
이런 범선에 오르는 경험이야 그다지 새롭지 않아도 선장실에 들어오기는 처음이었다. 지스카르는 대륙을 여행하던 시절에 익숙하게 느꼈던 호기심을 오랜만에 상기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관찰하다가 공연한 오해를 일으킬까 저어되었으므로 의식적으로 시선을 삼갔다.
히스파니에가 와인 랙에서 한 병을 꺼내 들고 물었다.
“한 잔 드시겠소? 술이 내키지 않으시거든 차를 내오라 하겠소.”
지스카르는 둘 다 정중하게 사양했다. 고르라면 단연 차를 선호하지만 분주한 사람들에게 제 일로 번거로움을 더하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술 자체를 불호하거나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다른 것을 권하지 않았다. 그저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뽑아 잔에 쏟았다. 병목을 움켜잡고 기울이는 손놀림이 평범하게 투박한 뱃사람처럼 보였다. 잔을 거의 가득하게 채우는 것도 보편적으로는 귀족답지 않은 매너로 여겨졌다. 물론 이 땅에 계급이 사라진 나라를 세우는 데 일생을 바치는 자에게는 단지 사람이 먹고 자는 일상의 한 모습일 따름이다. 지스카르는 히스파니에의 태생과 그 태도에 관한 것 대신에 다른 생각을 했다. 히스파니에는 그들이 만나기로 약조한 목적을 앞당겨서 종결할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노인은 들어 올린 잔으로 제 왼편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자줏빛 반사광이 찰랑거렸다.
“이 무렵에는 저쪽 발코니에서 달이 잘 보일 테니 추천하겠소. 유령선이나 해적선이 나타나지 않고서야 아무도 그대의 사색을 방해하지 못할 거요. 당신이 원치 않으면 나 역시도 그럴 테고 말이오.”
“외딴 사색은 늘 내면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유의미한 것이지만, 지혜로운 이와 옥석을 가리듯이 말을 고르고 또 나누는 즐거움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어르신의 귀한 시간을 청해도 실례가 아니라면 원하고 싶습니다.”
상대의 주름진 눈가에 웃음기가 배어들었다. 못 말리겠다는 심경이 담긴 눈길은 저를 곤란하게 만드는 손아랫사람을 대하는 어른과 비슷했다. 꺼리거나 얕잡는 기색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신선한 느낌이었다. 지스카르의 나이쯤 되면 저보다 연식이 많은 사람과 접할 기회는 차츰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히스파니에가 선장실의 주인으로서 먼저 문을 열었다. 짜고 습한 냄새가 물씬 다가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반달 모양인 발코니에 서서 한 손으로 난간을 짚은 지스카르는 그제야 두건을 뒤로 젖혔다. 사방에서 파도가 너울거리는 소리, 선체가 수면을 힘차게 가르면서 물거품 일으키는 소리가 적당히 소란스러웠다. 바닷바람은 마음껏 뛰고 뒹굴고 휘적거리면서 배를 앞지르기도 했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했다. 순풍이었다. 지스카르는 이마 위로 자잘하게 흐트러지는 머리칼을 무의식중에 쓸어 넘겼다. 물론 곧바로 헛된 짓임을 깨달았다. 바다 위에서 머리를 정리하느라 애쓰느니 파랗게 윤이 흐르는 물결을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는 쪽이 올바르다. 그러한 마음가짐은 온전한 개인의 신분으로 자연을 둘러볼 여유가 부족해진 사람이라면 더러 가지는 즐거운 의무감에 가까웠다.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니 과연 추천할만한 자리입니다. 영지에서만 지내다 보니 참 오랜만에 바다 구경을 합니다.”
“남들보다 책임이 많은 분이니 그럴 만하겠소. 중압감을 느끼시오?”
그 질문은 갑작스럽기도 하고 뜻밖이었다. 빙그레 웃은 지스카르는 소금기 때문에 다소 끈적거리는 난간을 매만졌다.
“느낍니다. 동시에 기쁘게도 여깁니다.”
“평생 느긋하게 살아갈 성미는 못 되시는구려. 내가 그대에게 좋은 일을 한 것 같소.”
“예. 가히 그러합니다.”
그것이 진솔한 대답인 줄 아는 히스파니에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파도에 버금가는 기백이 깃든 육성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지막한 톤은 밤의 운치를 흩뜨리지 않고 도리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산란하는 소릿결을 좇듯이 허공에 시선을 잠시 비꼈다. 그리고 눈동자는 푸르스름한 달빛과 더불어 아래로 향한다.
난간 밑으로 펼쳐진 바닷물은 넓고 깊었다. 감히 헤아리기 어렵기에 실감이 안 되는 거대함은 혼란한 감상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잃을 만큼 도취하기에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까닭에 지스카르의 내면과 바다의 마력은 적절한 간극을 유지했다. 나탕송 백작의 진면목은 부드럽고 우아한 언동으로 자주 감춰지지만, 감수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니면서도 그 자신이 쉬이 감수성에 휩쓸리는 부류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지스카르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훨씬 냉철하게 훈련된 정신의 소유자라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검푸른 수면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얼마 동안은 침묵이 표표했다. 별안간 히스파니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세이렌 전설은 밤바다에 홀린 이들이 수면에 흐릿하게 비친 제 얼굴을 미지의 존재로 착각한 것에서 시작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드오. 혼자서 이런 풍경을 밤새 바라보면 미치지 않기가 힘겨울 터, 바람 부는 소리가 신비로운 노랫말로 들린대도 이해할 만하오. ”
“어르신께서도 힘겨움을 느끼십니까?”
“어째서 대대로 많은 데모닉이 광인이 되거나 단명한 것 같소?”
완곡한 되물음을 받고 지스카르는 제 우문이 면구스러워졌다.
“송구합니다.”
히스파니에는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니 개의치 마시오. 말 한마디에 동요할 정도로 연약한 늙은이는 아니라오.”
농조로 덧붙인 소리에 지스카르도 담백하게 미소하며 긍정했다.
“그 점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세이센을 화두로 그들은 바다에서 기원한 전설이나 뱃사람 사이에서 통용되는 미신에 관하여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 배의 선장이며 데모닉인 노인에게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미신이라면 지스카르도 여행과 책에서 소소하게 얻은 지식이 있었다. 배를 침몰시킨다며 검은 고양이는 태우지 않는 것이라든가 태풍을 부른다는 이유로 휘파람을 금기시하는 것이 일례였다.
“모두 허무맹랑한 소리요. 두려움이 유발하는 비합리적 사고를 대표하는 예시로 삼기 충분할 거요.”
단호하게 일축한 히스파니에는 곧 유연해진 어투로 말을 이었다.
“물론 나는 세상의 신비를 전부 알지 못하고, 자연이 일으키는 강력한 파괴와 맞서기엔 무력한 것이 인간이오. 항해 중 발생하는 사고는 생명과 직결되니 작은 불운도 따르지 않길 기원하는 마음을 어찌 공감하지 못하겠소.”
“지식이 소수의 전유물일 것이 아니라 만인이 공평하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공포가 무지에서 출발하니까요.”
“맞소. 지식의 독점으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오.”
꽤 신랄하게 평가한 노인은 난간 너머로 잔을 기울였다. 바닥에 약간 고여 있던 포도주가 바다로 떨어졌다. 보잘것없는 한 방울, 아슬아슬한 두 방울, 바다를 넘치게 할 듯한 세 방울. 빈 잔이 다시금 똑바로 일어섰다. 이제 투명한 유리 속은 심야의 위장에서 간간하게 숙성된 파도로 술을 갈음했다. 잇단 히스파니에의 음성은 한결같이 명확한 어조였다.
“그러나 뱃사람들에게 몇몇 미신의 비이성적 성질을 깨우쳐 줄 필요에 관해선 고민할 문제요. 내가 어느 선원에게 휘파람을 불게 시킨다고 가정합시다. 그런 후에 태풍이 오는지 안 오는지 지켜보자고 하면 실제로 태풍과 만나지 않더라도 그는 불안함에 평소처럼 일하지 못하오. 반면에 미신을 그대로 두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소. 이것은 그릇된 믿음을 그릇된 상태로 두는 편이 나은 경우요.”
“그가 휘파람을 불지 않았는데도 태풍을 조우하면 누군가가 금기를 여겼노라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선원이 존재하지 않는 범인을 찾는 데 자신을 소모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또한 무고한 자가 그 원흉으로 몰려도 불필요한 분쟁이 시작됩니다. 편리한 맹신에 안주하면 당장은 평화로우나 이처럼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는 법입니다.”
“이제 보니 그대는 비약에도 능하구려.”
짧은 웃음소리가 바람인 양 스쳤다. 지스카르는 잠시 침묵했다. 히스파니에가 부정적으로 응수한 탓이 아니라 그의 웃음에서 감지한 취기가 원인이었다. 노인에게서 술에 약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 터라 의아했으나 금세 갈무리했다. 의식적으로 지양하면서도 지스카르 역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부터 결백할 수 없었다.
“어르신.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자연스럽고, 뿌리 깊은 의식을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운 현실은 절실하게 이해합니다. 그러나 가지 친 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공리를 위한 길에는 혼란과 역경이 불가피합니다. 이를 알면서 외면한다면 결과적으로 다가올 미래를 방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른 명목으로 사람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은 정녕 옳은 일이오? 선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동반하지 않는 사실을 누구보다 그대가 잘 알리라 믿소.”
뼈아픈 일침이었다. 그가 소공작이 겪었던 사건을 넌지시 이르는 줄 어찌 모를까. 소년에 관해서는 그들이 최초로 대면한 밤에 이야기 나눈 바 있으나 그때부터 불과 1년밖에 안 지났다. 상처가 아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며 아르님에겐 그것을 기억하고 언급할 권리가 있다. 지스카르가 가담자나 방관자에 속하지 않았을지라도 때때로 무지는 중죄였다. 끔찍한 시기를 보내야 했던 두 젊은이의 이름은 매양 날카로운 죄책감으로 가슴에 꽂혔다. 히스파니에는 지스카르의 흉금을 충분히 사려 깊게 헤아렸다.
“나탕송 백작, 그대와 일전의 소년이 품은 선한 의지는 알고 있소. 세상의 굉대한 폭풍에서 마냥 자유로운 자가 어디 있겠소? 이성이 아닌 은원으로 바라보면 타자(他者) 모두가 원수일 거요. 모든 일이 도통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음이 애석할 따름이오.”
“저 바다에 견주어도 모자람 없는 식견을 지닌 어르신께도 녹록하지 못한 세상이니, 저와 같은 범부에겐 오죽하겠습니까.”
“엄살이 과하시구려. 세상 누구도 당신을 범부라고 칭하지는 못하오.”
엄살인가. 어느덧 쉰 살쯤 먹은 남자는 생경한 단어를 곱씹으면서 눈동자에 울렁거리는 파도를 실었다. 대화가 멈춘 틈새로 평범하게 스며든 정적. 항구에서 꾸준히 멀어지던 범선은 언제부터인가 물결대로 방랑하는 월색처럼 느리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보라 튀는 소리도 상당히 잦아들어서 영원토록 미완성으로 되풀이할 파도의 노래가 한층 선명했다. 지스카르의 심상은 먼 데서부터 기어이 눈꺼풀을 밀어 올리던 파동과 교집합을 이루었다. 현기증이 나서 난간을 조금 더 힘주어 잡으려는 찰나, 견고한 닻가지가 어깨를 잡아챘다. 히스파니에의 손이었다.
“괜찮소? 이 늙은이는 멀쩡하건만 오히려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그대가 취한 듯 보이는구려.”
안정적인 목소리에서 술에 취한 기색이라곤 찾기 어려웠다. 종전에 취기로 착각했던 유다른 요동이 바로 본인에게서 기인했음을 지스카르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너무 깊게 들여다본 것 아니오?”
문장에는 주어가 빠졌으므로 히스파니에가 무엇을 지칭할 의도였는지 불분명했다. 그러나 무엇을 넣는대도 분명히 말이 될 터였다. 지스카르는 제 상태를 고백했다.
“실은, 종종 뱃멀미를 합니다.”
그 사실은 아까 술을 사절한 까닭 중 하나이기도 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으셨소?”
“잠들지 못하고 바닷가에 섰던 이유의 연장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들어갑시다. 배를 돌리겠소.”
“히스파니에 어르신.”
지스카르는 천성이 즉흥적이지 못했다. 혈기왕성하던 소싯적에도 그러했으며 세월과 함께 민중의 벗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더더욱 진중하게 변했다. 개인적인 충동으로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평상시의 그가 취할 행동이 절대로 아니었다.
“미련하다 여기셔도 도리가 없습니다만, 약한 어지럼증일 뿐이니 조금만 더 폐를 끼치게 해주십시오.”
따라서 그 말을 한 직후에 지스카르는 약간이나마 후회했다. 그렇지만 번복하지도 않았다. 그때까지 어깨를 지그시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건 어렵지 않은 부탁이오. 다만 그대를 이대로 난간 앞에 세워두어도 안전할지 모르겠소.”
상이한 이해(利害)와 부득이한 회의(懷疑)가 얽힌 관계인데도 히스파니에가 내비치는 호의는 놀랍도록 관대했다. 그의 자유분방한 성품에 기반한 것인지, 단순하게 연장자의 미덕을 행하는 것인지 확인할 방도는 묘연했다. 하여간 이 노인처럼 품위 있는 상대에게 외람되이 고집을 피우면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는 주인에게 횡포나 부리는 무뢰한과 다름없으리라. 지스카르는 순순히 말했다.
“어르신의 심려는 당연합니다. 제가 꼼짝하지 않겠노라 철없는 아이처럼 굴면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문 하나를 두고 발코니와 선장실은 극명하게 단절된 세계였다. 달과 바람과 파도가 자아내는 서정은 성큼 물러나고 인위적인 실용과 미감의 영역이 사위를 에워쌌다. 히스파니에가 잔을 다시 채우는 동안, 지스카르는 방문객용 의자에 앉아서 현기증을 가라앉혔다. 곯아떨어진 고래처럼 모든 것이 요지부동인 실내에서 칸델라만 유일하게 기묘하게 흔들리며 빛과 그림자를 저울질했다. 그 종잡기 어려운 형태는 삶 같기도 하고, 데모닉 같기도 했다. 무심코 떠오른 감상이었다. 의자에 등을 무겁게 기대노라니 히스파니에가 흘끔 돌아보았다.
“피로하신 모양이오. 그럴 시간이 되기는 하였소.”
“아닙니다. 피곤한 것과는 다릅니다.”
지스카르는 가슴 앞으로 양손을 깍지 낀 다음, 고개를 살짝 내렸다.
“저는 지금 아리송한 평온함을 느낍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정신없이 돌진하던 병사가 돌연한 휴전 소식에 도로 후퇴하며 고요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의 기분이 이러하겠지요.”
형형한 눈이 속내를 가늠할 듯 주시했다. 지스카르는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잠자코 앉아 있으니 멀미 증세도 그럭저럭 호전되는 듯합니다.”
“다행이오. 공연한 초대로 힘들게 하였는지 마음이 편찮았소.”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는 오늘 제 의식을 늦게까지 깨워 놓았던 모종의 정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온 히스파니에가 남은 의자에 앉았다. 선장실 중앙, 두 개의 의자는 낮은 원형 테이블을 향해 화살표처럼 사선으로 대칭을 이루었다. 아득한 위에서 내려다보면 철저한 대척점도, 하나로 맞닿은 선도 아닌 형태였다. 모호한 여백 사이로 두 사람은 금언과 시선을 교환했다. 느슨하게 얽히고설키는 덩굴이 숫제 뿌리를 내릴 즈음, 히스파니에의 말소리가 나직하게 깔렸다.
“그대는 퍽 괴이한 사람이오. 이는 칭찬으로 들어 주시오. 나는 난제를 싫어하지 않으니 말이오.”
격조와 위엄을 아우르는 억양은 그들을 싣고 있는 선체를 연상시켰다. 지스카르는 히스파니에가 맨정신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비결을 알 것 같았다. 무진하게 변화하며 무엇이건 흡수하고 삼키는 바다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자신만의 튼튼한 배를 건조했다. 이따금 들이닥치는 풍랑조차 거꾸러뜨리지 못하고 세월과 더불어서 히스파니에를 능수능란한 선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노인은 응당 뭇사람의 존경을 받을 인물이지만 결코 위대한 데모닉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지스카르는 기쁘게 겸허할 수 있었고, 그러한 사실에 얼마쯤 들뜬 자신의 심리를 인정했다.
“괴이하다는 평은 처음이군요. 보통은 어르신의 견해에 의아해할 겁니다.”
“그러하면 그들이 당신을 잘못 보았던가 당신이 내게만 다른 모습을 보였던가, 둘 중 하나가 분명하오. 어느 쪽이오?”
그것은 질문의 형식을 띠었으되 질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사안은 정답을 선별하여 내보이지 않더라도 명명백백하다. 지스카르는 다른 말을 꺼냈다.
“첫새벽이 오기 전에는 뭍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가을이오. 동이 트려면 멀었소.”
히스파니에는 시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단언했다. 물론 그의 말대로였다. 발코니 문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직 어스레한 빛 한 줄기도 투과하지 않았다. 새카만 장막은 배를 비밀스럽게 감싼 채 선장실에서 오가는 함의를 모른 척 눈감고 있다. 미력한 인간이 어찌 밤낮의 길이를 마음대로 재단하겠는가. 순응할 도리 외엔 없었다. 그렇기에 상대가 선뜻 제시한 구실은 소극적인 선택조차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몹시 깔끔했다. 서로가 동의한다면 바깥으로 주의를 돌리지 않는 한, 햇빛은 늙고 잠 많은 개처럼 더디게 올 터였다. 무른 현기증을 정제하며 지스카르는 히스파니에의 무르팍을 내려다보았다.
“긴 밤을 지리하게 만들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간단하오.”
말과 함께 은은한 포도 내음을 물씬 풍기는 잔이 테이블에 놓이더니 곧 발등을 적시는 포말처럼 앞으로 밀려왔다. 제시하는 바는 명확했다. 한결 까다로운 문젯거리를 야기하는 것이다. 비록 지스카르가 평소에 선호하고 따르는 방식과 크나큰 차이는 있으나 사뭇 대담하고 한편으로는 매력적인 해결책이었다. 뱃멀미를 한다고 말한 사람에게 전혀 모르는 듯 술을 건네는 태도는 히스파니에가 어떤 진실을 간파했는지 시사했다. 와인의 성질 못잖게 혼미한 암시였다. 사실상 이 제안은 지스카르의 수락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흥미로운 효력을 발휘한 셈이고,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노회한 데모닉은 각기 다른 이유로 만족할 테니 경탄할 만한 수완이다.
이윽고 지스카르는 숙고에 종지부를 찍었다. 잇따라 뱃멀미를 앓은 적이 없기에 정확한 동작으로 손을 뻗었다. 문틈으로 내리 스며드는 파도 소리가 구태의연하게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끝끝내 잠들지 못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