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보리] 스트렐리치아


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귀에 거슬릴 정도였으나 학생들의 눈꺼풀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강의실 채운 이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너나할 것 없이 지루하다는 표정이다. 이날따라 유독 쌀쌀한 공기가 강의실 안까지 파고들었는데 몇몇은 벌써 감기에 걸렸는지 연신 코를 훌쩍거렸다. 그 외에는 이따금 책장 팔랑거리는 소리와 교수가 분필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소리뿐이었다. 늙은 개처럼 축 늘어진 분위기가 강의실 내를 점령하고 있었다. 한 번쯤 으름장을 놓을 법도 하지만 이 논리학 교수는 몸소 나서서 애들을 깨우는 것보다 쪽지 시험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더 선호했다.

“어, 눈이다.”

누군가 한마디 중얼거리는 말이 강의실에 파문을 일으켰다. 곧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일파만파 퍼졌고 학생 대부분이 창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심지어 교수도 순간 말을 멈추고 그 행동에 동참했다. 수업이 주는 강력한 효과들 중 가장 나른하고 안락한 걸 취한 이들은 마냥 꿈나라에서 헤맸다. 마지막으로 그때까지도 눈치를 보던 몇몇도 하나둘씩 창가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잿빛 하늘에서 민들레 꽃씨 같은 새하얀 눈송이가 모든 소리를 덮어버릴 듯 고요하게 떨어졌다. 봄이 코앞인 계절에 눈이 내리는 일은 드물어서 한동안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이내 풍경에 도취되어 눈이 떨어지는 궤적을 시선으로 덧그려가며 보기만 했다. 교수는 수업을 하기 틀렸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제자들처럼 이 신기한 날씨를 구경하고 싶었는지 책을 내려놓았다.

마침 창가 자리에 앉은 보리스는 비교적 수월하게 바깥을 구경할 수 있었다. 때늦게 지상에 내려오는 눈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허공을 허물어내며 땅에 그 몸을 뉘는 모습은 언뜻 지는 꽃처럼 보여 애처로움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일, 다 헤진 겨울의 끝자락.

“밖에 나가볼까?”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자 소년이 빙긋이 웃었다. 귀티가 흐르는 얼굴에 맑은 미소가 잘 어울렸다. 마침 교수가 수업을 끝냈고 조슈아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소꿉친구와 루시안을 깨웠다. 눈에 내린다는 소식에 눈이 초롱초롱해진 루시안은 제일 먼저 뛰어나가 강아지처럼 폴짝거렸다. 막시민은 매년 보는 눈이 뭐가 신기하냐고 투덜거렸다. 신난 사람은 평소에도 죽이 잘 맞는 루시안과 조슈아 콤비뿐이다. 보리스는 손바닥을 펼쳐 눈송이 하나를 조심스레 받았는데 차가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녹아버렸다. 약간의 물기를 제외하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리스는 땅으로 추방당하는 이 눈이 허무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막시민과 떠드는 조슈아의 목소리가 귓전에 스치자 어째선지 카르디가 떠올랐다. 잔인한 운명에 짓눌려 이 눈처럼 스러지고 말 가엾은 인형. 요 며칠 그가 추위에 떠는 모습을 종종 본 까닭에 보리스는 걱정이 되었다. 보리스는 친구들 사이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보리스? 어디 가?”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한쪽에 조용히 있던 란지에가 불렀다. 보리스는 주저하다가 적당히 돌려 말했다.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

란지에는 세세하게 캐묻지 않았다. 그저 곧 수업이 있다는 사실만 상기시켜주곤 고개를 돌렸다. 보리스는 서리가 내린 듯 희끄무레해진 땅을 밟아갔다. 아침부터 몹시 춥더라니 땅까지 얼어붙어서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보리스는 이따금 입김이 번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눈이 내려 희뿌연 풍경은 입김이 더해질 때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보였다. 보리스는 겨울처럼 차가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모처럼 정적에 푹 잠긴 세계와 청량한 기운이 폐로 스미는 느낌이 좋았다.

북탑의 흑갈색 외벽이 눈에 들어올 즈음, 막 기숙사에서 나오는 한 소년이 보리스의 눈에 띄었다. 멀리서 보아도 큰 키에 감탄이 절로 터질 만큼 비율이 좋은 몸, 타고 남은 재처럼 밝은 회색 머리카락의 소유자는 이 학원에서 유일무이했다. 감춰진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소년의 겉모습만은 조금 전 같이 수업을 들었던 소공작 조슈아와 완전히 똑같았다. 아니, 기실 외견만 같은 것만도 아니다. 느리게 나아가는 움직임이 금방이라도 실이 끓어질 마리오네트처럼 위태로웠다. 보리스는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이 네냐플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 카르디는 북탑에서 얼마 떨어지지 못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눈이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마른 두 팔을 힘겹게 허공으로 뻗어 올렸다. 보리스는 멈칫했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처절함이 감돌았다. 한 줄기 빛을 갈구하는 걸까. 아니면 신을 원망하는 걸까. 그대로 두면 깨진 비스크 인형처럼 산산조각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가슴이 서느래진 보리스는 얼른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르디.”

어쩌면 조슈아라고 불러야하는지도 몰랐다. 이곳은 누구나 다니고 볼 수 있는 장소였고 카르디의 존재는 비밀이었으니까. 하지만 보리스는 그러기 싫었다. 설령 그가 인형이어도 조슈아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카르디라는 개인을 짓뭉개고 싶지 않았다.

보리스의 목소리를 듣고 카르디의 손끝이 눈에 띄게 떨렸다. 하지만 수초가 흐른 뒤에야 힘없이 팔을 내리고 보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도 몇 번쯤 눈을 깜박이고 나서 상대를 제대로 인식했는지, 도무지 생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눈동자에 설핏 감정이 떠오른다. 카르디는 말을 잃어버린 양 창백한 입술을 약간 벌린 채 멀거니 시선을 맞출 따름이다. 보리스가 한 발 더 다가가자 카르디는 가까스로 말소리를 냈다.

“추워.”

그야 외투 하나 걸치지 않고 나왔으니 추운 게 당연하다. 그러나 보리스는 단순하게 몸이 춥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살을 에는 북풍이 분들 뻥 뚫린 가슴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만 할까. 보리스는 몸을 떠는 카르디의 어깨에 자신의 망토를 덮어주었다. 에피비오노의 망토는 추위를 막아주니 지금의 카르디에겐 유용할 터였다. 얼음 같은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카르디는 손바닥에 눈송이를 받고 눈꺼풀을 내려 닫았다.

“눈은 내 손에서도 녹는구나. 이런 인형의 살갗 위에서도…….”

마른기침을 내뱉은 카르디가 다시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보리스는 어떤 은밀한 감정이 그 안에서 일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어느 누가 이토록 깊고 아름다운 동공이 인형의 눈이라고 생각이나 할까. 카르디 말마따나 그의 손에서도 눈은 녹고 입김도 퍼진다. 어딜 보아도 인간이었다. 카르디는 마른 손으로 망토자락을 살며시 쥐었다. 재차 기침을 두어 번 했는데 별로 괴로운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질감이 확 풍길 만큼 무미건조하다.

“이만 들어가는 게 좋겠다.”

어느새 발밑에는 흙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려 쌓였다. 카르디는 묵묵히 북탑으로 발을 돌렸다. 보리스는 그의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줄까 하고 손을 내밀었다가 이내 거두었다. 다만 달팽이처럼 느린 카르디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조용히 걸을 뿐이었다. 학생이 서너 명 옆을 지나갔으나 누구도 카르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소공작과 부딪칠까 염려되는지 조심조심 옆으로 몸을 빼기만 했다.

기숙사에 하나뿐인 독방에 들어서자 바깥보다 훨씬 싸늘했다. 거실 벽난로에는 불씨 흔적은 고사하고 재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리스는 자신의 방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카르디의 팔을 잡아 세웠다.

“불 피울 테니까 앉아서 몸 좀 녹여.”

카르디는 고개를 끄덕이곤 얌전히 바닥에 깔아준 담요에 앉았다. 보리스가 마른 장작에 불을 피워 부지깽이로 몇 번 들쑤시자 곧 벽난로 안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보리스는 카르디 옆에 나란히 앉아 열기를 쐬었다. 카르디의 피부에도 서서히 따스함이 번져 파리한 얼굴이 그럭저럭 나아졌다. 아니, 어쩌면 벽난로를 중심으로 한 빛이 얼굴을 비추어서 그런 착각이 드는지도 몰랐다. 카르디는 무릎을 끌어모은 채 붉고 푸른 장작불을 담담하게 응시했다. 그러나 까만 망막에 담기는 불길도 카르디의 무기력한 눈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했다. 보리스는 잠자코 벽난로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때때로 부지깽이로 장작을 뒤집어 숨을 넣어주는 것만이 보리스가 유일하게 한 행동이다.

그러기를 한참. 비로소 싸늘한 거실에 훈기가 가득해졌다. 방까지 데울 순 없어도 숯이 채 식기 전에 모아서 잠시 가져다 놓으면 그럭저럭 추위를 견딜 만 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였다. 보리스의 뺨에 눈처럼 부드럽고 찬 감촉이 닿았다. 흠칫 놀라 돌아보니 카르디가 손을 살며시 대고 있었다.

“넌 따뜻하구나. 그렇겠지, 살아있는…진짜 사람이니까.”

보리스는 처연한 손이 제 볼을 감싸게 놔두었다. 하지만 자신을 부러워하는 눈빛을 가만히 입 다물고 받아 넘길 수 없었다.

“살아있단 건 체온으로 증명되진 않아.”

“그래? 그럼 무엇으로 증명하지? 기억? 감정? 사고? 난 모든 걸 기억해.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프고 괴로워. 하루에도 온갖 미친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그래도 난 인형이야. 결국 그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해.”

카르디는 손을 거두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약간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이 옆으로 흘러내려 그의 귀를 덮었다. 보리스는 본디 다감하게 남을 위로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설령 잘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어떤 말이든 무의미했다. 굳이 카르디의 질문에 답한다면 보리스는 이렇게 말할 도리 외엔 없었다.

“글쎄. 나는 현자가 아니지만…살아간다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닐까.”

그러자 카르디가 픽 웃었다.

“현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현자 같은 말을 하네.”

카르디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타닥타닥, 불티가 타오르는 열에 휘말려 위로 치솟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보리스가 다시 뒤엎자 부스러진 재와 불티가 벽난로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그러다 하나하나 가라앉는 걸 지켜보는데 별안간 카르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보리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방으로 향했다.

“방안은 추울 거야, 카르디.”

두어 발짝 더 내디딘 후에야 멈춘 카르디는 조그맣게 대꾸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난 부서질 인형인걸.”

“그래도 넌 아직 살아있어.”

짊어진 운명의 무게와 비교하면 너무 작고 연약해 보이는 등이 움찔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꼭 흐느끼듯 어깨를 잘게 떤 카르디가 돌연 몸을 보리스 옆으로 돌아왔다. 카르디는 천천히 양 무릎을 꿇고 보리스를 올곧게 응시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쓰러지다시피 하며 보리스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야위었다지만 엄연한 소년의 몸이었다. 키도 더 컸고 무엇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보리스는 그만 중심을 잡는 데 실패했다. 잠깐은 카르디를 붙잡고 버티려 했으나 결국 같이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카르디는 보리스의 가슴팍에 뺨을 댄 상태로 미동조차 없었다. 보리스는 혹여 넘어지다 다치기라도 했을까 염려되어 어깨를 흔들려는데 때마침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심장 뛰는 소리가 아름다워.”

보리스한테 규칙적으로 뛰기만 하는 고동에서 미적인 무언가를 느끼기란 고역에 가까웠다. 그런 까닭에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름 아닌 카르디가 하는 말이라 무슨 심정인지는 알 것 같았다. 보리스는 카르디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조금 무겁긴 했지만 보리스는 오랜 시간 혹독하게 단련한 몸이었다. 마른 소년 한 명의 무게는 대수로운 것도 아니다. 카르디는 꽤 오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리스의 어깨 언저리에 닿은 손은 종종 맥박 리듬을 따라하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윽고 소년은 상체를 일으켜 보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불빛이 뺨에 어려 그의 창백한 피부를 감추었는데도 여전히 하얗다. 따뜻한 벽난로 불도 혈색을 돌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까칠까칠하게 튼 입술이 보리스의 뺨에 천천히 닿았다가 느끼지도 못하게 떨어졌다. 그 행위가 어찌나 조심스럽던지 보리스마저 잠깐이나마 긴장했다. 이어서 카르디는 보리스의 심장이 뛰는 곳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자신이 가져본 적 없는 생명의 증거를 느끼기라도 하듯 말이다. 이때 카르디의 얼굴은 전에 본 바 없이 평안했다. 그 표정은 조슈아와도 달랐고 이제까지의 카르디와도 달랐다. 보리스는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깊고 잔잔한 안온함으로 가득해서 지금만은 불안과 공포도 감히 그를 넘보지 못했다.

“넌 강하고 단단하구나. 그리고 무척 따뜻해.”

카르디가 몸을 겹치고 보리스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한 줌 숨을 내쉬자 솜털이 곤두섰다. 누구나 그러하듯 카르디의 숨결 역시 따뜻했다.

“네 온기에 녹아버릴 것 같아.”

귓바퀴를 타고 흘러드는 속삭임은 분명 조슈아와 같은 목소리다. 그러나 조슈아가 하는 말이 노래하듯 낭랑하다면 카르디는 고운 백사(白沙)처럼 보드라우면서 덧없는 구석이 있었다. 나른한 만족감으로 채워진 음성의 이면에는 은근한 서글픔이 깔렸다.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카르디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입술을 취할 때까지도 보리스가 꼼짝도 못한 까닭 말이다. 소위 키스라고 부르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보리스는 차마 그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과연 이걸 키스라고 불러도 될까. 거의 떨어지기 직전이나 다름없게 살며시 맞닿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카르디는 입술이 품은 숨결, 그 숨이 내포하는 심장 박동, 그 안에 끝없이 순환하는 뜨거운 피마저 모조리 느끼려는 듯이 굴었다. 이 처절하기까지 한 입맞춤을 무슨 수로 내치겠는가.

“차라리 그랬으면, 녹아버리면 좋겠어.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점점 작아지는 말소리는 흡사 사위는 불, 녹아내리는 눈과도 같았다. 목소리를 따라 카르디의 눈동자도 서서히 침잠하기 시작했다. 그의 호흡이 평소보다 조금 빨라졌다. 카르디는 눈을 내리깔고 아직도 찬기가 남은 손으로 보리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보리스, 네 안에서 녹아버리게 해줘.”

엷게 미소한 카르디가 다시 얼굴을 가까이했다. 두 번째로 입술이 겹쳐지기 전, 멈칫한 카르디가 분명하게 보리스의 눈을 마주보았다. 보리스는 제 눈을 그대로 비추는 검은 눈동자에 스치는 불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카르디의 희망인지 절망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카르디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보리스의 입술로 샘물 같은 말을 흘려 넣었다.

“그래서 내가 네 안에 영원히 살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