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량무현] 무도


캄캄했다. 검은색 위로 어렴풋하게 회색 얼룩 같은 것이 번져 있다. 흰 빛줄기가 거기에 번쩍 뿌리를 내렸다가 사라진다. 순간 검은색은 깊은 바닷속처럼 암청색이 되고, 뿌리가 박혔던 얼룩은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입체적인 명암을 띤다. 빛의 뿌리가 명멸하는 찰나에 모든 것이 퍽 밝아지지만, 거짓말처럼 금세 어둠에 편입된다. 우르릉, 쾅, 탕탕. 지축을 흔드는 파동이 빛의 입자와 분방하게 어울렸다.

눈을 깜박였다. 하늘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굼뜨게 깨달았다. 밤하늘. 허겁지겁 팔다리를 놀리고 나서야 내가 누워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시야가 급격하게 바뀌는 동시에 흔들렸다. 하늘만 볼 때는 몰랐는데 내 몸은 좌우로 또 앞뒤로 계속해서 요동치는 중이었다. 나는 너울에 실려 있다. 나를 향해 쇄도하는 자동차 같기도,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질주하는 들소 같기도 한 파랑. 여긴 바다 위였다.

수심을 헤아리며 절박하게 상승만 갈구하지 않아도 되는 수면 위쪽.

헛숨을 삼키며 일어나려다가 하도 흔들려서 도로 넘어졌다. 내가 잠기지 않도록 받친 것은 평평한 목재 바닥이다. 마치 배에서 갑판만 떼다 둥그렇게 잘라서 띄운 모양이었다. 나무판은 10평은 족히 되어 보인다. 하지만 바다는 인간이 실감할 수 있는 규모를 압도한다. 모든 단위를 무의미하게 전락시킨다.

“선생님.”

소스라쳐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신해량을 보자마자 헐떡이며 말을 쏟아냈다.

“해량 씨! 저희가 탈출한 거예요?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나요. 다른 사람들은요? 왜 저희 둘밖에 없습니까? 여긴 어디예요?”

신해량이 이마를 거의 덮고 있던 머리칼을 넘겼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예? 대체 무슨 일이…….”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또 탈출에 실패하고 침대에서 떨어졌던가. 울다가 그냥 침대로 올라가 눈을 감아 버렸던가. 아니, 일어나서 배낭을 챙겨 나갔나. 물이 들어오는 복도에 넋을 놓고 마냥 서 있었나. 내가 백호동에서 나오기는 했었나.

빗방울 하나 떨어트리지 않고 총 쏘는 소리를 내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다에 덩그러니 뜬 나무판과 신해량과 나를 차례로 보았다. 비현실적인 무대였다. 내가 해저 기지에서 죽을 때마다 살아나 또 처음부터 탈출하던 것은 뭐 얼마나 현실적이냐마는.

“이건 꿈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혹시 주마등인가. 아니야. 이건 과거의 기억도 아니잖아. 멍하니 파도를 보다가 종내 그 자리에 누워 버렸다.

꿈이든 주마등이든 다른 이상한 현상이든 알아내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나는 지쳤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해저기지에서 나가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지겹고, 못 볼 꼴을 보는 데도 진력이 났다. 사람이 죽는 걸 그만 보고 싶다. 나도 그만 죽고 싶다. 가족이 그리웠다.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아주 조금은, 아예 끝나서 해방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얼마나 되풀이하면 나갈 수 있을까. 나가더라도 그때의 내가 멀쩡할지 모르겠다. 그게 제일 무섭다. 누가 죽어도 별 감흥이 안 들고, 나도 모르게 약한 사람을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해도 내가 눈치채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적어도 여긴 바다 위고, 총소리를 듣느니 천둥이 훨씬 낫다. 게다가 혼자도 아니었다. 그래, 그냥 여기 있어야지. 나는 코를 훌쩍였다.

“선생님. 많이 힘드십니까.”

등 뒤에서 건너온 담담한 물음이 이제껏 들었던 어느 말보다 나를 걷잡을 수 없이 몰아붙이고, 무너트리고, 화나게 했다. 비슷한 소리는 몇 번이나 들었는데도 정말 이상하게도 그랬다. 당연히 힘들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이걸 어떻게 견디라는 거야. 신해량 잘못은 하나도 없건만, 괜히 그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곧 자괴감에 빠져 축축한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비겁하게 굴지 말자. 내심 그가 진짜 신해량일 리가 없다고 믿으니까 쉽게 화풀이하고 싶은 거야.

“후회가 돼요.”

“무슨 후회입니까.”

“이것저것요. 가족이랑 더 많이 얘기할걸. 쑥스러워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할걸. 아무 이유도 없이 포옹할걸.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볼걸.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을 때 연애해 볼걸. 남들 다 가는 놀이공원 데이트도 해 볼걸. 가끔 시끄러운 락 페스티벌에 가서 뛰고 소리도 지를걸. 땀이 흠뻑 나게 춤을 춰 볼걸. 충치 때문에 참았던 달콤한 디저트를 내키는 대로 먹어 볼걸. 뭐 그런 거요.”

하나하나 말하다 보니까 정말 많았다. 심지어 지금도 계속 떠올랐다. 내가 열거한 후회 중 몇몇은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못 했고, 몇몇은 현실적인 문제로 하기 어려웠다. 지금이야 후회해도 막상 그때로 돌아가면 내 인생은 비슷하게 흘러갈 터였다. 지난날을 곱씹다가 의식적으로 털어냈다. 설령 내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완전히 바뀐대도 과거로 간다는 건 이제 생각만으로도 끔찍스러웠다.

“제 후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뭐가 제일 후회되세요?”

무심코 물었다가 금세 후회 리스트에 한 줄이 추가됐다. 그가 가장 최근에 겪었던 상실을 떠올리면 너무 빤하지 않은가. 잠시간 침묵한 끝에 신해량이 뭉뚱그려 답했다.

“하나만 꼽기에는 너무 많군요. 간혹 사선을 넘나들 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후회가 많은 삶을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살아가면서 후회를 줄이기가 쉽지 않더군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고, 미처 못 보고 지나쳤거나 떨어트리고도 몰랐던 제 것들을 매번 새롭게 발견합니다.”

“위험한 일을 그만둘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했습니다.”

왜 그만두지 않았냐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신해량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다. 결심한 대로 인생이 당연하게 흘러가면 세상에 힘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정말 그만할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난 신해량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도, 백애영과 서지혁에게도 많이 도움을 받았다. 만약 그들이 없었으면 내가 침대에서 떨어져 깨는 상황을 더 빨리, 빈번하게 겪었으리라.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남을 해치거나 호의를 선별적으로 베푸는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난 신해량이 좋다. 그러니까 폭력과 거리를 두고 살아서 나랑 흔해 빠진 안부 연락도 자주 주고받기를 바랐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후회들 중 하나는 지금도 할 수 있겠군요.”

“예?”

“땀이 나게 춤을 추셔도 모른 척하겠습니다.”

황당한 나머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는 출렁거리는 나무판을 빙 둘러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특별한 무대를 만나기도 어렵겠다.

“여기서요? 음악도 없이 저 혼자 말입니까?”

“상대가 필요합니까?”

“어어… 글쎄요. 장르에 따라 다르니까요. 클럽 같은 데서 추는 춤 말고도 고전 영화에 나오는 그런 거 있잖아요.”

고개를 끄덕인 신해량이 돌연 일어났다. 나는 내 팔을 잡아당기는 힘에 대책 없이 이끌렸다.

“잠깐, 잠깐만요, 해량 씨!”

“후회를 하나라도 줄여 보십시오.”

하지만 이건 꿈일 텐데 여기서 뭘 한다고 리스트에 줄을 긋는 것이 맞는지 아리송했다. 내가 그렇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까닭은 단순했다. 내 오른손에 겹지는 손바닥의 촉감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도록 생생했다. 결국 어색하게 신해량과 마주 섰다.

“해량 씨는 춤추실 줄 아십니까?”

“모릅니다.”

하도 자신만만하게 일으켜 세우기에 물었는데 부정이 너무 당당해서 말문이 다 막혔다. 큰 너울이 감히 바다에 우뚝 선 우리를 넘어뜨릴 양 솟아올랐다. 훅 떠오르는 몸을 가누려고 어어, 하면서 다급히 맞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신해량이 왼팔로 내 허리를 당겨서 뒤로 안 넘어가게 잡아 주었다. 파랑은 계속해서 높낮이를 바꾸어 가며 우리를 들었다가 놓았다. 때로는 연속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발을 재게 놀려야 했고, 때로는 두 개의 다른 물결이 맞부딪혀 바닥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안 넘어지기 위해 서로를 잡고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흐르듯이 움직였다. 한낱 인간은 거스르지 못하는 파동에 떠밀릴 뿐이나 어설프게나마 춤추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저는 춤을 잘 모르지만, 걷기와 많이 다르지 않군요.”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 두 쌍의 발동작을 응시했다. 신해량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빠른 걸음, 잠깐 멈추기, 느린 걸음, 서성이기. 다시 속력을 높이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더뎌지고, 이따금 살짝 발돋움, 여기가 어딘지 확인하듯 돌아서기. 우레와 물결이 쌓은 화음으로 음악을 대신하고 바다 위를 배회하며 추는 무도. 물론 우리의 엉거주춤한 몸짓에 춤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부적합했지만, 달리 보는 눈도 없는데 뭐 어때. 불만이면 이 바다 한복판으로 올라오라고 해.

“저 진짜 못 추네요.”

“파트너를 잘못 만난 탓이라 여기십시오. 선생님의 후회 하나를 지우기엔 제가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 해량 씨는 나쁘지 않은데요. 원래 저보다 몸을 잘 쓰시니까요.”

“선의의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티가 났습니까…?”

“선생님은 잘 숨기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웃음기가 배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신해량의 눈은 내 머리 위를 뒤덮은 하늘만큼 검고, 동트지 않을 밤처럼 깊다. 아울러 밤하늘에선 절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온도와 정서를 품었다. 이제는 내가 정말 꿈꾸고 있긴 한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긴 시간이 되든 여기 붙박여서 아무것도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은 채 안주하자고 말하면 신해량은 뭐라고 할까.

“해량 씨. 괜히 춤추자 했다고 후회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파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군요.”

마치 그 말에 호응하듯 나무판이 가파르게 기울었다. 우리는 서로 한 손을 부여잡은 채 개구리처럼 바짝 엎드렸다. 붕 떠올랐던 바닥이 수면에 내리꽂혀 사방으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신해량이 불쑥 말했다.

“돌아가야겠습니다.”

“네? 어디로요?”

“저희는 두고 온 것이 있지 않습니까.”

신해량이 내게서 돌린 눈길을 새카만 물 아래로 보냈다. 나는 그만 울상을 지으면서 그의 손을 움켰다. 몰라. 그런 소리를 웃으면서 하지 마. 물에 잠기기 싫다. 너무 차갑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이 줄줄 쏟아지곤 했다.

“그냥 저랑 같이 여기에 있어요. 이번엔 그래도 되잖아요.”

“선생님. 여기 계시면 선생님은 더 많이 후회하실 겁니다.”

이전과 말은 달랐으나 실로 그가 할 법한 거절인 까닭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꿈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나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내가 알아 온 신해량이라고 여겼다.

“…아직 땀 나게 춤을 다 못 췄어요.”

“나중에 또 같이 추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선생님도 약속을 해 주시겠습니까?”

치사했다. 그는 환상에 불과할지 모르고, 설혹 진짜라도 약속을 까맣게 잊을 터였다. 그러니 지켜지지 못할 약속임을 알면서도 나는 기어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제가 선생님보다 늦게 가겠습니다.”

신해량은 내 손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을 것처럼 꽉 잡아 주었다. 하지만 끝내 놓치게 되리라. 누구든 침닉하는 동안에 철저히 혼자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나는 그게 벌써 외로워졌다.

다리를 담그자마자 격랑이 발을 휘감았다. 팔목을 누르고 있던 신해량의 손끝이 조금조금 미끄러져서 손가락에 걸렸다. 최대한 그와 늦게 떨어지려고 애썼으나 바다가 단호하게 나를 데려갔다. 물은 사나운 뱀처럼 허리를 감아 당기는가 하면 사뭇 부드럽게 끌어안았고, 빠르다가도 느려지고 멈췄다가도 다급히 재촉하면서 짜디짠 키스를 퍼부었다. 한시도 쉼 없이 춤추던 그것은 내 몸을 깊이깊이 끌고 가 마침내 어마어마한 힘으로 등을 확 떠밀었다.

나는 침대에서 떨어진 충격에 잠에서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