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오전 진료만 하는 대신 평일보다 이르게 진료를 시작한다. 나는 일출까지 두 시간이나 남은 아침에 일어나서 반쯤 감은 눈으로 씻고 집에서 나와 평소와 다른 길로 걸었다. 근처에서 제일 일찍 영업을 시작하는 카페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이 시간에는 치과 아래층 빵집도 문을 안 열었다. 커피를 사서 천천히 치과에 도착해도 준비할 시간은 여유로웠다. 밤새 얼어붙은 어둠은 거리를 둔탁하게 흘렀고, 무서리 같은 입김이 공기에 흰 잎맥을 펼쳤다. 그런 추위에도 여상하게 불을 밝힌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텀블러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가득 담고 걷노라니 정신적 피로가 약간 가신 상태였다. 커다란 수조들이 눈에 띈 건 바로 그때였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새 간판을 건 가게 앞에 대형 수조가 다섯 개나 있었다. 얼추 둘러보니 개업한 지는 며칠 지난 것 같았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이곳이 철물점 자리였던 걸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거의 자취를 감춘 철물점이 아직 거리에 남았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 유약한 세상의 귀퉁이가 단단해진 느낌이 들곤 했다. 몇 번은 필요한 물건이 있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잘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철물점이 폐업하고 새 가게 들어설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
창백한 조명을 받아 울렁대는 푸른빛 속에서 활어들이 지느러미를 굼뜨게 퍼덕였다. 사위가 적요했으므로 산소발생기, 여과기, 히터 따위가 계속 돌아가는 소음은 유달리 요란했다. 횟집이라니.
해수의 오염이 심해지고 수온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긴 세월 바다를 터전으로 삼았던 수많은 종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는 중이었다. 그나마 대중에게 특히 관심받는 고래 같은 포유류, 상어, 바다거북도 아슬아슬하게 멸종을 면하고 있으니 비교적 관심에서 먼 종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해양 동물은 수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중금속, 방사능, 미세 플라스틱 등이 누적된 점도 문제였다. 그래서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어패류는 못 먹을 것으로 분류되는 미래가 오리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생각보다 대충 살았다. 그냥 먹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소비량은 줄었으나 그 이유는 어획량이 감소해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따금 떠올랐다가 다시 침전하길 반복하는 생물들. 아직 사람에게 먹힐 만큼 개체수를 유지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멸종할 위기에 처할지도 모르는 녀석들. 탁한 광택을 내는 비늘과 눈알들. 문득 수조에 비친 나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반투명하고 푸르무레한 얼굴이 마치 수조 속에 잠긴 것 같아 등골이 선득했다. 나는 잰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텀블러 뚜껑의 마개를 열어 커피를 홀짝였더니 혀가 데는 뜨거움에 추위는 한결 가셨다.
동이 틀락 말락 하면서 세상이 몽몽하게 밝아질 무렵이었다. 치과 건물 앞에 도착하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해량 씨! 막 무거운 유리문을 당기려던 남자가 뒤돌아섰다. 또렷한 눈매에 화살처럼 걸린 시선은 일 초도 방황하지 않았다. 신해량은 넓은 의미에서 명료한 사람이고, 나는 이런 흐리터분한 아침에 그를 마주쳐 유난히 반가웠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정말 춥죠.”
집을 나서면서 본 체감온도는 영하 8도였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것 같던 신해량도 목도리와 장갑으로 얼굴 외 맨살은 꼭꼭 숨긴 모습이다.
“날씨를 보니 오후엔 눈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땀을 흘리셨군요.”
“급하게 걸었더니 덥네요. 오는 길에 커피를 사느라 길을 좀 돌아서 왔거든요.”
양손으로 그러잡은 텀블러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뺨이 얼어서 어색한 미소를 지은 느낌이 들었다. 치과를 몇 시에 여는지 잘 아는 신해량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서두르실 시간은 아닙니다. 천천히 올라가셔도 괜찮습니다.”
입구에 수문장처럼 섰던 그가 옆으로 비키고 문을 당겨 열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계단을 오르면서 텀블러는 잠시 한 팔에 안고 목도리를 풀었다. 끝까지 올려 채웠던 패딩 지퍼도 가슴께로 내려서 윗옷을 가볍게 팔락였다. 촉촉한 목덜미가 찬기에 식었다. 앞뒤에서 따로 울리던 두 쌍의 발소리는 차츰 맞물리다가 이내 멈췄다. 우리는 2층에서 다시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눴다.
“그럼 전 올라가 볼게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예.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워 울렸다. 나는 해량 씨도요, 하고 화답하려다 말고 미적거렸다. 말이 입속에서 올강댔다. 깨끗한 검은색 눈동자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천장에 설치된 조명은 평범한 흰색 매립 등인데 거기서 떨어진 인공 불빛은 신해량의 이마와 속눈썹에 걸려서 꼭 샹들리에처럼 뽀얗게 반짝였다. 추위 때문에 코끝과 광대 언저리가 발갛지만, 얼굴에서 나는 광채가 퇴색하기는커녕 묘하게 청순했다. 이 사람은 콧물을 흘려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미남이겠지.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내가 왜 돌아서길 주저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질문을 듣자마자 할 말이 생겼다.
“이따 저랑 점심 드실래요?”
신해량은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치과 진료를 마치고 체육관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한 다음 위층으로 향했다. 나는 치과 원장실 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출근한 김에 지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일상에서 평범하게 있는 일이다. 언제 신해량에게 밥을 한 끼 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의 뜨개질 취미에 주변인들은 자주 수혜를 입었으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겨울만 해도 내가 쓸 수면 양말과 장갑, 바다를 위한 산타 망토를 받았다. 빨간색 오밀조밀한 망토를 두른 고양이가 큰 감명을 주었기에 나도 모르게 사진을 스무 장 가까이 찍어 신해량에게 보냈었다. 너무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며 귀찮게 했는데도 그는 만든 보람이 있다면서 내 법석을 받아 주었다. 그날의 답례를 여태 못 한 것이 때마침 마음에 걸렸을까.
이윽고 점심, 치과 문을 닫고 내려간 나는 신해량에게 선언했다.
“저희 뷔페 가요. 제가 밥 사겠습니다.”
한 번 사양하는 그에게 내가 이것저것 받기만 한 사람이 안 되려면 오늘 밥을 꼭 사야 한다고 설득했다. 결국 수긍한 신해량을 아침에 부랴부랴 예약했던 가게로 데려갔다. 음식은 맛있었고, 신해량은 정말 잘 먹었다. 부스러기를 떨어트리거나 소스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정갈하게 접시를 비워 나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큰마음 먹고 왔기 때문에 나도 조금씩 다양하게 맛봤다. 초밥은 그냥 지나쳤다. 수조 밑바닥에 무기력하게 가라앉아 있던 몸들이 불쑥 떠오른 탓이었다. 초콜릿 퐁듀는 홀린 듯이 구경하다가 겨우 참고, 철저한 기준에 의거하여 고른 음식만 접시에 담았다. 집에서 만들기 번거로운 것. 또는 흔하게 팔지 않는 것. 후식으로는 담백한 쿠키 두 조각에 커피를 마셨다.
뷔페를 나와 신해량에게 뭐가 제일 맛있었는지 물으니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감태 비빔밥입니다.”
나는 반색해서 호응했다.
“저도요. 감태가 엄청 신선했고, 특히 양념장은 뭘 어떻게 배합했는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양념 덕에 감칠맛이 아주 좋더군요. 덕분에 맛있게 먹었습니다, 무현 씨.”
“별말씀을요. 저도 오랜만에 잘 먹었는걸요.”
주말을 맞은 백화점 식당가는 사람으로 붐벼서 일행과 붙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왼손 의지에 신해량의 손이 살짝 부딪혔다. 화들짝 팔을 몸 안쪽으로 당겼다가 내 반응이 오해를 일으킬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 겨울엔 의지가 꽤 차갑거든요. 저도 가끔 제 살에 닿으면 놀라는데… 생각해 보니 지금은 실내라서 괜찮겠네요.”
“예. 차갑진 않았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불편하셨던 게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그러면서 신해량은 실수로 맞닿지 않게끔 어깨 간격을 한 뼘 넓혔다. 안 그래도 되는데. 하지만 굳이 붙어서 걸어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이상해서 나는 잠자코 신발 코로 시선을 내렸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마치 불편한 뜬소문이 되어 어중간하게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해량 씨는 다시 체육관으로 가시나요?”
묻고 보니 좀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당연히 돌아가겠지. 나는 장갑을 꺼내려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쯤에서 헤어져야 신해량도 얼른 일터로 복귀할 수 있을 터였다.
“무현 씨.”
“네?”
“영화 보시겠습니까?”
“…네?”
나는 덜컥 멈춰서 호두까기 인형처럼 턱을 내리고 신해량을 쳐다보았다.
“다른 일정이 있으십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럼 가시죠. 우리는 고소한 팝콘 냄새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신해량은 내게 영화 선택권을 넘겼다. 나는 예고편이 줄지어 재생되는 전광판 대신 눈에 안 띄는 선반에 구시대 유물처럼 꽂힌 팜플렛들 앞에 섰다. 눈은 포스터를 훑었으나 머릿속에선 의문과 걱정이 교차했다. 관장이 자리를 비운다고 체육관이 안 돌아가진 않겠지만, 정말 괜찮나?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하루하루 일에 찌들어 사는 직장인의 오지랖인가? 근데 갑자기 영화를 보자는 이유가 뭘까? 내가 혹시 사회적 교류가 부족해서 좀 외로운 사람처럼 굴었나? 괜히 아무 팜플렛이나 집었다가 꽂고 있자니 신해량이 물었다.
“내키시는 영화가 없습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해량 씨는 아무거나 봐도 괜찮으세요?”
“특별히 가리는 장르는 없습니다.”
“그럼 상영 시작이 제일 가까운 걸로 봐요.”
신해량은 동의했다. 우리는 10분 후 시작하는 영화를 골라 바로 입장했다. 토요일 낮에 사람 많은 백화점인데도 상영관은 절반밖에 안 찼다. 요즘 세상에 밥 한 끼에 준하는 값을 내고 영화관까지 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데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네요. 해량 씨는요?”
“해저기지 영화관에 몇 번 갔었습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리 오래됐다곤 못 할 과거의 단편들이 생생하게 부상했다. 내가 입을 다문 까닭은 그런 기억 때문이 아니고 신해량에게 나도 그 영화관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해서였다. 콜라라도 사 올걸. 빨대를 물고 있었더라면 지금의 침묵도 자연스러웠을 텐데. 차선책으로 휴대폰을 꺼내 진동 모드로 돌렸다. 혹시 몰라서 전원을 끄지는 못했다. 휴대폰을 주머니 속으로 돌려놓았을 때, 따분한 광고가 흐르는 스크린에 무심히 붙박여 있던 시선이 내게로 건너왔다.
“죄송합니다. 괜한 얘기를 꺼냈군요.”
“예? 해량 씨가 죄송할 일은 아니죠. 제가 물어본 건데요. 거기서 무슨 영화를 보셨어요?”
“잔잔한 영화들이었는데, 잠을 못 자던 시기여서 자려고 노력했던 것만 기억합니다.”
그가 편물 짜는 취미를 들인 사실로 미루건대 영화 감상은 별반 도움이 안 됐나 보다. 길었던 광고가 마침내 끝나고 상영관 불이 꺼졌다.
줄거리도 모른 채 시간만 보고 선택한 영화는, 주인공이 죽음을 피하려 분투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세계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곧 다른 세상의 자신들이 하나같이 죽었거나 죽을 위기에 빠진다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공은 같은 운명을 피하고자 애쓴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러 세계의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망했다. 싸늘하게 식어서 영원한 암흑 속으로 떨어지는 납빛 몸들. 생명의 기둥에서 가지치기 당하는 뼈와 살.
속이 안 좋아졌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오한에 등이 금세 축축해졌다. 해량 씨, 저 화장실 좀. 간신히 말을 남긴 즉시 상영관에서 빠져나왔다. 텅 빈 화장실의 구석 칸에 들어가 손바닥으로 가슴 가운데를 문질렀다. 밝은 데서 심호흡을 깊이 되풀이했더니 차츰 나아졌다. 세면대에서 땀을 훔친 손을 씻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허옇게 떴다. 영화를 더 보기는 어려울 성싶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간다고 나왔으니까 연락이라도……. 나는 퍼뜩 코트를 놓고 나왔음을 깨달았다. 휴대폰은 코트 주머니에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복도로 나갔다. 뜻밖에도 신해량이 입구 맞은편 벽에 서 있었다. 한 팔에 내 코트에 걸린 채였다.
“저 따라 나오신 거예요?”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셨습니다.”
“속이 거북해서요. 아까 과식했더니 체했나 봅니다.”
“그렇습니까.”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알았다. 신해량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거짓말 탐지기라는 걸 상기하고 멋쩍게 웃었다. 도중에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찰나, 그가 코트를 건네기에 그냥 고맙다는 말만 했다. 잠시 앉아서 쉬라는 권유를 받아들여 영화관 옆 카페로 들어갔다. 따뜻한 허브차 괜찮으십니까? 어, 네, 좋을 거 같아요. 나를 먼저 안쪽 자리로 보낸 신해량이 기다렸다가 음료를 들고 왔다. 두 개의 회백색 머그잔에서 은은하게 상큼한 향기 났다.
“루이보스 레몬입니다. 카페인이 없다는군요.”
“향이 좋네요.”
수면을 후후 불어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러운 온기가 가슴으로 내려가 사르르 번졌다. 신해량은 내게 뭘 묻지 않고 그저 나와 똑같은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풍경에 시선을 보냈다. 이따금 내 낯을 확인하는 눈길은 포말처럼 잠시 밀려왔다가 물러날 뿐이었다. 나를 꾸준히 관심의 범주 안에 두어 머물게 했지만, 그 울타리는 언제든 쉽사리 넘어갈 수 있게끔 낮았다. 그것은 가장 안전한 형태의 배려 같았다. 급히 상영관에서 벗어나야 했던 까닭을 설명하면 신해량은 잠자코 들어줄 테고, 침묵하면 응당 언급하지 않을 거였다. 내겐 선택권이 있었다.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또는 둘 중 하나를 고려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는 태도로 일관하기.
나는 멍하니 머그잔을 만지작거렸다. 신해량의 호의는 분명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참 이상하게도, 마냥 기껍지만은 않았다.
“해량 씨. 제가 왜 그랬는지 안 궁금하세요?”
일 초, 이 초, 삼 초, 사 초, 오 초……. 불현듯 이성이 정수리를 때렸다. 내가 방금 뭐라고 내뱉은 거야. 머리를 확 들자마자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동자를 맞닥뜨리고 더없이 부끄러워졌다. 정신 차리자, 박무현. 신해량이 믿음직스러운 성격이라고 해도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건 염치가 없잖아. 나는 옆에다 건성으로 말아 놓았던 패딩 코트를 주섬주섬 펼쳤다.
“차도 다 마셨는데 이만 일어날까요?”
제발 신해량이 한결같은 아량으로 계속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다. 서운하게 느낄 때는 언제고,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스럽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고 백화점 출입문을 통과할 때까지 신해량은 내 바람에 부응했다. 다시 말해서 밖으로 나온 후에는 입을 열었다. 다만 질문은 아니었다.
“눈이 오는군요.”
그새 어스레하게 빛바랜 하늘에서 싸라기눈이 나부꼈다. 이제 막 내리기 시작했는지 바닥은 채 젖기도 전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역이라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이 뒤섞여서 만원이었다.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면 도로가 막혀서 인파가 더 몰릴 테니 그나마 시의적절하게 나온 셈이다.
키가 고만고만한 정수리들 위로 유독 높이 솟은 데다가 체격도 커서 남들보다 부피를 잡아먹는 남자를 여러 쌍의 눈이 흘긋거렸다. 한 명당 최소 세 번쯤 신해량을 쳐다보는 듯했다. 키가 커서 한 번, 얼굴을 다시 보려고 한 번, 또 보고 싶어서 한 번. 마음 깊이 이해가 되면서도 다소 신선했다. 내 주변엔 신해량의 외모에 익숙해진 이들뿐이다. 혹시 나도 매일 보다시피 하는 바람에 첫 대면 때 경탄했던 마음을 잃은 것 아닐까. 그래서 새삼 신해량을 빤히 쳐다봤더니 그도 빤히 마주 직시했다. 나는 그만 눈을 피하고 말았다.
전철에서 내렸을 무렵엔 싸락눈이 함박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햇빛이 사위면서 생기는 공백은 전깃불이 총총하게 채우는 중이었다. 개찰구를 통과한 후에 우리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역 입구로 나가자마자 멈춰 섰다. 날이 흐려 평소보다 빨리 어두워졌지만, 무수한 눈송이가 불빛을 반사해서 세상은 불균등하게 환했다.
“벌써 쌓였네요. 해량 씨는 집으로 가세요? 아니면 체육관?”
“체육관으로 갑니다. 눈이 꽤 내리는데, 우산이 필요하십니까?”
“어, 전 괜찮습니다.”
그러고는 또 얼마간 침묵을 디딘 채, 흑백이 어우러진 저녁 풍광을 눈에 담았다.
“무현 씨. 궁금하지 않아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신해량이 아까의 화제를 꺼내리라고 내심 예상해서 놀라진 않았다.
“네, 압니다. 저는, 음, 그냥 한 소리였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
“제게 얘기하시지 않을 겁니까?”
그 물음이 알려 달라는 요청으로 들려서 곁을 돌아보았다. 내게 드리워진 눈빛은 짐작을 확신케 했고, 나는 방금 스스로 했던 말이 무색하게 열없이 기뻤다.
“…좀 이상한 얘기라서요.”
머뭇거리며 운을 떼자 신해량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하군요.”
저런 얼굴로 웃으면서 말하면 보통은 그럴 의향이 없었어도 속을 허심탄회하게 풀고 싶기 마련이다. 이미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내재된 경우, 효과는 한층 강력해진다. 우리는 길에 얄브스름히 깔린 눈을 더디게 밟으며 나아갔다. 서두를 꺼내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렸다. 상영관에서 날 사로잡았던 생각은 어떻게 설명해도 비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신해량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염려되는 것보다 말하기 자체가 난감했다. 이 나이 먹고 지인에게 ‘사실 내가 외계인일지도 몰라’ 급의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려면 꽤 용기가 필요하다.
“그 영화에서요. 평행 세계의 주인공들이 계속 죽잖아요.”
“예.”
“보고 있으니까 문득 그런 상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세계의 박무현들은, 해저기지에서 죽었고, 혹은 지금도 탈출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실제로 나는 여러 번 죽었다. 하지만 죽은 후에는 어김없이 침대로 돌아갔다.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던 사람들도 전부 되살아났다. 나는 초자연적 현상을 규명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해설할 수 없고, 단지 내가 겪은 시간을 받아들일 뿐이다. 한 가지 분명했던 사실은 한 세계에서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반복됐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혹시 죽은 나는 그대로 방치되고, ‘박무현’이 죽지 않은 세계에서 깨어났던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추측이다. 내가 죽은 해저기지와 내가 깬 해저기지가 다른 세계였으면 이전에 탈출했던 사람들도 다시 만났으리라. 고통스럽게 죽었다가 부활한 이들도 까닭 모른 채 아파하지 않았겠지. 그럼에도 아주 작은 가능성이 의혹을 집요하게 가열했다. 사람이 상식을 초과하는 불가해한 사건을 겪고 나면 불가능성을 단언하기 어려워진다. 과연 예전의 내가 바닷속에서 죽고 또 죽길 되풀이하는 상황에 갇힐 줄 꿈에라도 알았겠는가.
“지나친 생각인 건 압니다. 근데 아까는 그랬어요. 수많은 내가 죽어서 바다에 가라앉은 상상이 꼭 진짜처럼 느껴져서 무서웠습니다.”
까마득히 깊은 밑바닥에 산적하는, 푸르스름하게 희면서 뭉툭하게 부푼 몸들. 실제로는 끔찍한 수압 때문에 사지 형태도 온전치 못하겠지만, 상상 속의 내 몸들은 마치 횟집 수조에 첩첩이 쌓인 생물들을 닮아 있다. 불투명하게 흐려진 눈알에는 오직 공허한 냉기뿐이다.
빛과 어둠을 번갈아 지나면서 어느덧 큰 사거리에 도착했다. 보행자 신호가 오래 걸려서 돌아오는 곳이라 우리는 육교를 건너기로 했다. 한발 앞서 계단을 디딘 신해량이 곧 입을 열었다.
“예전에 고래 낙하에 관한 얘기를 읽은 적 있습니다.”
눈송이로 성기게 엮인 그물이 사방을 부드럽게 에워싼 탓인가. 나직하며 담백한 육성은 이날따라 파동이 아니라 질감을 가진 물처럼 흘렀다.
“고래가 죽으면 해저로 가라앉아 바다 생물을 수십 년이나 먹인다고 하더군요. 세 단계에 걸쳐 청소동물이 살과 뼛속 지질을 먹고 나면 마지막 단계로 광물화된 뼈만 남는데, 그 뼈는 또 어떤 생물들이 정착할 터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고래는 자기 몸이 그들을 이롭게 할지 몰랐을 겁니다. 알더라도 굳이 원치는 않았겠지요. 그래도 고래의 죽음이 많은 생물을 먹여 살리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내 몸은 천천히 느려지고 있었다. 낙하하듯이. 아니, 부상하듯이.
“어딘가에서 무수히 죽었을지 모를 무현 씨는, 죽기를 원치 않으셨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를 살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무현 씨 자신까지도 끝내 구했을 겁니다. 당신은 그런 분이니까요.”
느려지던 몸은 육교 한복판에서 멈췄다. 신해량도 걸음을 세우고서 내게로 돌아섰다.
고래 낙하와 비슷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표해수층 생물들이 죽은 사체가 가라앉으면서 심해에 눈처럼 내리는 걸 마린 스노우라고 부른다. 대형 고래의 사체가 만들어내는 눈은 몇 년씩 내리면서 여러 생물을 먹인다고 들었다.
나는 함박눈이 하강하는 육교 아래의 광경을 부감했다. 어두운 가운데 휴대폰을 손에 든 사람들이 더듬이를 발광시키는 심해 생물처럼 돌아다녔다. 저 바닷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고래가 되어 주었다면, 그들은 내게 흰 눈이 되어 주었다. 그러니까 내가 자신을 다독이고 일으키고 멈추지 않았기에 여기 서 있기도 했지만, 나를 도와주고 위로하고 지켜줬던 사람들이 있어 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죽음을 기억한다. 무한교라고 의심하면서도 케이블카까지 데려갔던 신해량을, 나조차 믿기 어려운 내 경험을 믿어 주었고 또 치과에서 나를 살리려고 했던 신해량의 죽음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해량 씨.”
당신이 이 모든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낱낱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는 서로의 고래였다는 사실을.
신해량은 적당히 웃거나 흔한 겸양의 말로 화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인사의 깊이를 해수면에서 해저까지 헤아리듯이. 나는 언 뺨을 당겨서 활짝 웃어 보였다.
“점점 추워지네요. 얼른 가요.”
육교에서 내려와 얼마쯤 걸으니 눈에 익은 건물이 손바닥 크기로 보였다. 치과와 체육관이 위아래로 사이좋게 붙어 있다. 슬슬 갈라질 때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금 바다거북이 모래밭에서 움직이는 속도를 방불케 했다. 그렇게 갈림길에 다다르는 순간을 유예했지만, 언제까지고 다가오지 않는 때는 없었다. 나는 몇 발짝 이르게 멈춰서 신해량을 불러 세웠다. 연한 오렌지 빛깔 가로등 아래였다.
“실은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저희 오늘 데이트를 한 건가요?”
짤막한 침묵 속에서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신해량의 답변은 예상보다 빨랐고, 다소 애매했다.
“오늘은 아닙니다.”
혼란에 빠져서 그를 멀거니 올려다보노라니 이마에 눈송이가 톡 떨어졌다. 신해량이 불쑥 손을 뻗어서 내 정수리를 살짝 털었다. 눈이 쌓였던지 시야에 희끗한 것들이 스쳐 떨어졌다.
“ 다음 주에 같이 점심 드시겠습니까?”
어땠을까. 오전에 체육관 앞에서 그에게 점심을 먹자고 말하던 순간에 내 눈도 지금의 신해량과 비슷했을까. 눈앞의 사람을 다른 전부와 명백하게 구분하는 눈빛 말이다.
“…제가 그러자고 하면, 데이트일까요?”
“예. 데이트일 겁니다.”
하얀 숨결이 눈과 눈 사이를 헤엄치듯 상승했다. 입김은 끊임없이 재생을 거듭하는 살결처럼 보였다. 나는 신해량의 동공에서 미간으로, 잇따라 콧대와 입술과 턱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 다음 귓가를 타고 올라가 동공을 응시하고, 이마와 머리 위까지 우러른 뒤에는 한 발짝 다가섰다. 간격을 좁혀야 하는 당위가 없이도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이상을 열망하는 몸짓이기에 생물로서는 퍽 부자연스러운 짓이리라.
“좋아요. 같이 밥 먹어요.”
주머니에서 뺀 손으로 신해량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 주었다. 눈이 아래로 포슬포슬 나렸다. 우리는 거기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집에 가는 동안, 나는 어느 해저에 누적되었을 내 죽음들을 재차 상상해 보았다. 바다에 사는 대형 생물들과 견주면 보잘것없이 작은 데다가 뼈도 가느다란 몸들. 그러나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내 몸들은 온전하며 반질반질 빛나는 형상으로, 늘 눈이 흩날리는 풍경 속에 잘 누워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수십 년의 기나긴 낮잠에 빠진 동물처럼. 죽음으로 모두를 먹이고서 다시금 그 모두로부터 살을 얻어 소생하길 기다리는 어떤 고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