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란지] 항구에서


내가 스물셋이던 해, 우리는 함께 푸른 별장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바다와도 멀고 산과도 멀었으며 호수와도 멀었다. 어느 울창한 숲인가에 자리 잡은 별장에서 창밖을 보았을 때 나무 한 그루마다 한 폭의 장막으로 느껴졌다. 그토록 겹겹이 싸여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틈바구니에 홀연히 존재하는 별장은 마치 세상으로부터 유리된 아늑함에 둘러싸였다.

어스름에 새파란 지붕 색깔이 흘러내린 듯하던 새벽, 습관대로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서재에서 먼지 쌓인 책들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머지않아 빈자리를 알아차린 너는 내가 반드시 거기에 있을 줄 알았던 사람처럼 찾아왔다. 여기까지 와서 책이냐고 핀잔하려나 기다렸는데 까닭 모르게 잠자코 나를 응시했다. 내가 열어 놓은 서재 문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발자취도 나지 않았다. 몰랐겠지만, 사실은 네 조용한 기척을 느꼈다. 숨소리 죽인 채 오랫동안 바라보는 시선을, 헤아리기 어렵던 무언을, 나는 책에 몰두한 양 모른 척했으나 모든 감각은 육지로 달음질하는 파도와 같이 네게로 향해 있었다. 한참 뒤에야 발견한 시늉을 하고 언제 왔는지 묻자 네 얼굴에 미소가 빙그레 만개했다.

‘조금 전에 왔지. 깜짝 놀라 주려고 했는데, 네가 한발 빨랐네.’

내가 아는 한, 그건 우리가 사랑을 말한 이래로 네 입에서 나온 스무 번째 거짓말이었다. 다 외우지는 못해도 횟수만은 정확히 알았다. 데모닉 같은 기억력이 없는 까닭에 내가 택한 방법은 기록이다. 그래, 마치 나이 먹는 것처럼 쌓이는 네 거짓말을 매번 글자로 남겼다. 그날 밤에도 먼저 잠든 너 몰래 문장을 하나 보탠 후 지난 기록을 훑었다. 모두 날 기쁘게 해주려는 선의의 말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애수를 내포한 그 모든 말. 사상과 신념과 입장이 배격된 그 은신처에서 나를 찾아온 예감은 불가피한 풍랑과 같았다.

“고단하신 듯한데 조금 쉬시지요.”

분주히 놀리던 펜대를 멈추고 고개 든 내게 나이트워크가 지하실에 높게 달린 쪽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여기 오래 계셨으니 잠시 나가 바람이라도 쐬시면 어떻겠습니까.”

“비가 오는데 말이지요.”

“네, 비가 오니까요.”

그러니 남의 눈에 안 띄게 바깥 공기를 마시기 적합한 날씨라는 의미였다. 리젠테 씨가 휴식을 권할 만큼 피곤하던가. 생각이 다른 곳에 갔음을 알아차리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너를 떠올리는 일이라면 숨을 쉬고, 물을 마시고, 밤에 눈을 붙이듯 일상적으로 해낸다. 어느 날이건 내 머릿속에 네 모습이 있음을 모두가 모른다. 무심결에 펜대를 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깨달았다. 책상에 올려놓은 왼손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비로소 나는 뼈가 시린 통증을 감지한다. 나이트워크가 아니어도 약간의 주의력만 있다면 누구나 내 문제를 알아차렸다. 나는 펜대를 잠시 놓고 유독 차가운 왼손을 지그시 주물렀다.

“날이 춥군요.”

겨울치고 포근해 비가 내렸으나 지하실은 햇빛 한 점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습하고 싸늘했다. 천장에 매단 기름 램프와 벽난로에서 약하게 타는 불꽃이 보태는 온도는 미약했다.

“장작이라도 더 넣을까요?”

“아니요. 글씨를 쓰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가볍게 튀는 빗소리와 펜촉에 종이 긁히는 사각사각 소리가 우리의 대화처럼 섞인다. 네 목소리는 감긴 눈꺼풀을 어루만지는 음악이고 내 목소리는 백지에 실핏줄로 번지는 잉크였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경멸할 수 없었다. 선뜻 이질감을 느끼기에도 감미로운 차이였으므로.

“남부로 보낼 지령은 이게 전부이니 간추려 전달해주십시오.”

나는 다 쓴 글을 책상 모서리로 몰아두고 책으로 눌러 놓았다. 망명 의회가 내린 명령을 암호화해 각지로 전달하는 일이 내 임무였다. 필요하면 연설문을 작성하고 선전물에 쓸 문장을 만들기도 했다. 올라오는 보고를 수렴해 상부로 전달하는 일 또한 내게 주어진 것이다. 민중의 벗은 오래 점조직 형태로 명맥을 이어 왔다. 설혹 요정이 잠입하거나 덜미가 잡혀도 그 불길이 조직 전체로 번지지 않는 이점이 있지만 명령 체계가 복잡하여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도 있었다. 많은 남부 지역에서 크고 작은 승리를 거듭하고 체첼을 몰아붙이고 있는 지금, 민중의 벗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오래전 사건으로 표면에서 공작 활동을 벌이기 어려웠던 나는 조직 하부와 의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받아들였다. 의회로서도 도박이었을 것이다. 많은 나이트워크가 나를 보조했고 의회가 보낸 수행원들이 은밀하게 경호했으나 나는 매일 문밖에 선 죽음과 시선을 교환한다. 왕국군에게 발각되더라도 내가 체포될 염려는 없다. 내 손으로든 동지의 손으로든 목숨을 끊을 테니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따뜻하게 한 잔 드십시오.”

리젠테 씨가 벽난로에 걸린 솥에서 곡물차를 떠다 주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왼손으로 나무 컵을 감쌌다. 버려질 곡물 부스러기를 곱게 갈아 뜨겁게 타 먹는 차는 서민들이 겨울에 추위를 녹이려고 즐겨 마신다. 텁텁하고 싱거워 맛있다고는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곡물차를 입에 머금으며 네가 정성껏 우렸던 레몬그라스를 떠올린다.

“켈티카에 이변은 없습니까?”

“체첼이 왕국군을 재배치했습니다. 블루엣 강 수비는 약화되고 왕궁을 중심으로 방어를 보강했더군요.”

‘전격의 나흘’이 체첼에게 왕위를 가져다주었지만 켈티카를 사수하는 입장에서 블루엣 강은 불안 요소였다. 같은 방식으로 수도를 빼앗길 사태를 염려한 체첼은 지금까지 그곳의 병력을 뺀 적이 없었다. 대립파와 무력 충돌을 의식한 결정이거나 다소 노골적인 덫이리라. 그러나 전략은 나의 일이 아니다. 리젠테 씨는 나이트워크로서 정보를 파악하고 선별은 할지언정 사견을 더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망명 의회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의견을 밝힐 필요가 없다.

“아, 그리고 아르님 소공작이 비취반지 성을 떠났습니다.”

타인에게서 네 소식을 듣기는 오랜만이다. 나는 언제나 너에 관한 이야기를 소문으로라도 듣기를 바라지만 누구에게도 ‘아르님 소공작’을 콕 집어서 묻지 못했다. 어디에 가건 무얼 하건 바람결에 날아온 민들레 꽃씨를 보듯이 우연이나마 내 귀에 흘러들기만 기다릴 도리 외엔 없다. 곡물차를 삼키며 감았다 뜨는 내 눈꺼풀 안쪽으로 순식간에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친다.

“석 달만이군요. 데모닉의 석 달은 남들보다 길지요.”

일부러 너를 별칭으로 부름으로써 거리감을 못 박는다. 혀끝에 어리는, 레몬그라스를 연상시키는 거짓의 맛.

“행방은 묘연해요. 번번이 나이트워크를 따돌리다니, 공작가 솜씨도 알아줘야겠군요.”

나는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는 리젠테 씨를 일별했다. 내게 너에 관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종종 의심한다. 우리는 너무 공공연했고 관계는 번번이 트집거리와 약점과 장애가 됐다. 지금도 우리가 비밀리에 사적인 연락을 교환한다고 믿는대도 내겐 진실을 증명할 방도가 없다. 설령 의회가 공화주의자인 내게 수단을 가리지 않고 순종을 요구하더라도 증명하지 않겠다. 너는 자연인으로서의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이며 나 자체였다. 네게 비수를 찔러 마모된 인간성이 다시금 너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으니 또한 너는 내 마지막 보루이다.

“짧게라도 산책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역시 그렇죠? 잘 생각하셨어요.”

“네 시까진 돌아오겠습니다.”

리젠테 씨가 옷걸이에 걸린 내 외투를 대신 건넸다. 지하실에서 나오면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 않는 층계를 조심히 딛고 올라가 문을 연다. 소품과 도구가 적재된 공간에서 앞으로 넘어가면 적막한 무대 위로 이어진다. 텅 빈 객석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공연장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로비 구석에 마련된 직원용 쪽문을 열었다. 빗소리가 일제히 나를 뒤덮는다. 무모하게도 어디론가 멀리 나를 휩쓸어 데려가려는 작디작은 빗방울들. 망토에 달린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되풀이되는 비의 파문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물을 흠뻑 머금은 흙, 잡초, 나무 냄새가 짙다. 돌이 반듯하게 깔린 내리막길을 걷다가 골목으로 빠진다. 질퍽한 진흙이 구두코와 밑창을 더럽혀도 개의치 않는다.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은 두터운 구름에 달빛이 가려져 흐렸다. 지난해 여름은 장미가 들불처럼 불타오르는 듯이 뜨거웠고, 우리는 간신히 더위가 꺾인 무렵에 바다 짠 내음이 실려 오는 어느 벽돌집 다락에서 밤을 보냈다. 박공지붕에 달린 창밖은 칠흑이었다. 다락은 습했다. 반만 열어 놓은 창으로 소금 냄새가 스며들고 약간 땀을 흘린 네 체취가 야릇하게 번졌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침묵을 두 번째 연인 삼고 나란히 누운 채 하늘을 응시했다. 네가 말한다.

‘누가 그러는데, 배를 타고 수백 일을 끊임없이 항해하면 또 다른 대륙이 나올 거래. 거기엔 우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있잖아, 우리 그곳에 가서 살까.’

나는 고개를 눕혀 네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주 먼 곳을 향하는 네 눈동자에 맺힌 빛은 양초 심지가 타면서 만들어내는 불꽃이자 찬란하게 반짝이는 꿈이기도 했다.

‘거기에선 아무도 너와 나를 몰라. 내내 함께 다녀도 그게 큰일인 양 우려하는 사람도 없겠지. 그러니까 우린 새로운 세상이나 둘러보면서 즐겁게 살면 돼.’

‘수백 일이나 항해하려면 크고 튼튼한 배가 필요하겠군.’

‘내 능력으로 배 한 척이야 구할 수 있을걸. 게다가 내가 이래 봬도 뱃사람 후손이잖니. 이참에 선장 노릇을 해 보는 거야. 란지에 넌 갑판에서 고래를 구경하거나 책을 읽고, 그래, 낚시도 하면 되겠다.’

‘도착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면?’

‘음, 우리끼리 나라 하나 만들지. 네가 원하는 나라를 세우자.’

‘고작 두 명이 전부인 나라라니, 전대미문이군.’

상체를 조금 일으킨 네가 내 위로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드리운다.

‘대신 우리를 평가할 사람도 없지.’

우리에겐 노상 평판이 따라다닌다. 각자가 속한 집단에서 해당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가늠되고, 함께 묶여 저울에 올려지면 이해득실을 따지는 눈초리로 감정된다. 우리의 감정은 곡식 낱알과 피 몇 방울로 환산되며 창, 칼, 총과 다름없는 도구로 전락한다. 의무와 투쟁 안에서 우리는 결코 개인이 아니다. 네 말을 듣고 나는 우리에게 무지한 세계를 상상했다.

네 어깨를 잡아 눕히고 역으로 위에서 내려다보자 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허리를 숙여 너와 이마를 살며시 맞댔다.

‘그럼 가자.’

‘갈까?’

‘그래. 같이 떠나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미소하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에 너와 나는 다락에 있지 않았다. 그곳은 사방이 수평선인 밤바다였다. 무수한 길잡이 별들과 달빛이 내리비치는 파도 위에서 윤슬과 아울러 넘실대는 배의 선실이었다.

어느덧 축 늘어진 후드가 이마 앞쪽으로 빗물을 똑똑 흘렸다. 해풍에 날리는 빗줄기가 뺨과 입술을 적시기 시작한다. 이윽고 나는 자박자박 모래사장을 밟고 나아가 검푸른 수평선에 어깨를 대고 선다. 높게 일어선 파도가 뭍의 위력에 기어이 쓰러져 새하얗게 부서진다. 끈질기게 기어오른 거품은 내 발치에도 닿지 못했고 이따금 애써 도달한 거품 역시 손끝으로 구두 앞코를 훑고 사라진다.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거닐어 도착한 포구에는 크고 작은 선박들이 잠자코 정박해 있다. 풍랑으로 어느 배도 출항하지 못했으므로 포구는 한산했다.

나는 그물에 묶인 나무 상자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바다를 조망한다. 너는 근사한 배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초록색 깃발에 흰 꽃을 그려 표식으로 꽂을 테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리라 속삭였다. 다음번에 우리는 항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태어나고 또 네가 태어난 달에, 항구에서.

가을부터 아노마라드는 밀고 또 밀리기를 거듭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무자비한 겨울에 맞서 망명 의회가 남부에서 대승리를 거둔 이후 내가 이 항구 도시에 머무른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은 흘러 눈 대신 봄비가 내리고 나는 종종 포구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내가 너를 떠올리는 동안 너 역시 그러리라 믿으며 무심코 깃발을 찾는다. 그날 나눈 대화에서 얼마만큼이 진심이었을까 생각한다. 그때 모른 척 주고받은 선의의 거짓말들로 비로소 슬픔은 우리를 따라잡고 나는 예감을 완성시킨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 너는 저곳에 있다.

빗소리가 네 목소리 같이 도달하는 오후, 나는 눈을 감고 내게 닿아 있던 네 이마의 느낌을 회고한다. 비록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매해 2월이면 나는 항구에서 이렇게 바다를 지켜볼 터였다. 찰랑거리는 대해 한복판에서 맞이할 별의 밤을 기다리며, 초록 들판에 흰색 꽃이 핀 깃발 하나를 기다리며, 그 약속을 기다리며.

너를 기다리며, 조슈아.